아침부터 영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어진다. 알람을 6시 30분에 맞춰두었지만 30분을 이불 속에서 밍기적대다가 겨우 빠져나와 이를 닦고 세수하고 체크 아웃을 한다. 이런~~ 루앙남타로 가는데 비가 다 내리네. 여행 떠난 이래로 최고로 날씨 나쁜 날이다. 실비가 내린다. 안개도 잔뜩 끼고. 건기에 내리는 비라 놀랍기도 하고 어제까지 햇빛 쨍쨍하다가 갑자기 이게 뭔 조화인가 싶기도 하다.
주인 아줌마가 자는 딸을 깨워 큰 길가로 내보내 뚝뚝을 잡아준다. 날씨도 안 좋은데 내가 고생할까봐 신경써주는게 너무 고맙다. 5,000K에 북부 터미널까지 가기로 하고 올라타는데 아줌마가 꼭 다시 오란다. 물론이죠. 라오스에 다시 오고, 루앙프라방에 다시 오면 반드시 여기에 오지요.
뚝뚝을 타고 달리는데 실비라 그런지 옷이 금새 축축하게 젖어든다. 뚝뚝의 유리를 열심히 닦아내는 와이퍼를 보고 있자니 다 왔다며 내리라는데 보니까 왠 강변? 여기가 우돔사이(루앙남타에 가기 위해 버스 갈아타는 곳)로 가는 BUS STATION 맞냐고 하니까 이 아저씨 왠 헛소리? 팍뱅가는 BOAT STATION이란다. 팍뱅까지 보트타고 가서 우돔사이 가는 버스 타란다. 이 아저씨가?!? 물론 그럼 편하지, 돈이 문제지. 누가 보트 탄댔냐고 빨랑 버스 STATION 데려다 달라고 고래 고래 소리지르고 다시 뚝뚝에 올라 탄다. 가는 도중에 돈 더 달랠까봐 맘 졸이면서 더 달라고 하면 따져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다행히 5,000K만 받는다. 살았다. ^ ^;
버스 티켓을 사면서 몇 시에 버스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인 이 여자 曰, "No time, more people!" 이런다. 저걸 대답이라고 하다니. 기가 막혀서... 아마도 버스 출발이 시간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란 뜻 같다. 실제로 내가 산 건 버스 티켓인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슨 중고 덤프 트럭 같은거다. 내가 보기엔 벌써 꽉 찬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더 태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more people의 기준은 도대체 누가 세우는건데? 아주 엿장수 마음대로다. 아니 티켓 장수 맘대로다.
누군가는 트럭 짐칸에 타야 여행의 참 맛을 알꺼라고 했지만 이 비에 저기 끼어 앉았다간 감기 걸리기 쉽상이다. 운전사 뒷칸(침대칸) 좁은 틈 사이에는 벌써 두 명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할 수 없이 나는 거길 비집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그러지 않아도 비좁은 델 헤집고 들어온다고 나를 제지하며 손짓으로 뒤에 타라고 성화다. 그래서 내가 한국말로 '할머니! 저긴 너무 추워요. 나 감기 걸리기 싫어요!'하면서 손과 목을 동시에 가로 저어본다. 정말 영어로 말할 힘도 없이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랬더니 이 할머니 체념했나 보다. 조용히 자리를 내어 준다.
다행히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앉은지 30분만에 트럭이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한다. 버스 fee는 인터넷에서 조사할 때는 9,000k이었는데 어느새 올랐는지 22,000k이나 했고, 가격이 외국인 내국인 모두 적용되는지 라오 사람들마저도 깎아보려고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차장 오빠는 정말 완강한 태도다. 내기 싫으면 내리라는 식이 완전 배째라다. 아마 외국인에게만 적용되던 공식 바가지를 라오인들에게도 적용시키는가 보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졌나? 어쨌든 버스 요금 때문에 사람들과 차장이 한참을 실갱이 한다. 드뎌 출발! 세어보니 앞에는 운전수까지 6명, 뒤에 짐칸에 차장까지 25명이나 된다. 무슨 포로 수송도 아니고, 이건 정말 너무했다. 근데 나랑 같은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한국의 양반다리를 모르는지 꾸부정하니 앉아서 꽤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난 일찌감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어폰을 꽂는다. 라오 뽕짝이 멀미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비가 추적거리고 트럭은 안개 낀 산비탈 길을 힘겹게 올라간다. 처음 1시간 30분 동안은 강변을 타고 달렸는데 주위의 산은 안개에 휩싸여 있고 강위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데 그 쥑이는 분위기에 유기 구라모토의 'Lake misty blue'는 정말 잘 어울렸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환상적인 궁합이다. 라오 뽕짝 흘러나오는데 내가 이어폰 크게 해서 듣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옆에 할머니가 내 카세트에서 테이프를 빼앗듯이 꺼내 들더니 운전수에게 건넨다. 차내에, 물론 뒤의 짐칸까지 유키의 피아노 연주가 울려퍼진다. 음~~good! 앗! 그러나 운전수 구미에 안맞는지 1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라오 뽕짝으로 교체되어 버린다. 럴수 럴수 이럴수가! 흑흑~~ 3시간 쯤 흘렀을까? 다시 날이 개이기 시작한다. 운전수가 이번엔 타이 음악을 틀었는데 이건 좀 견딜만하다. 가락들이 많이 익숙한게 홍콩 영화 음악에서 많이 듣던 풍이다.
그 좁은 자리에서 다리 한 번 못 펴보고 6시간을 달려 우돔사이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준비해간 배랑 귤도 먹고, 옆에 할머니가 찰밥에 닭꼬치를 먹길래 조금 얻어 먹기도 했다. 오늘은 기어이 루앙남타까지 가야하므로 우돔사이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얼른 남타행 티켓을 끊고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도 이번엔 미니 버스다. 근데 버스 좌석마다 큰 타올을 씌워 놓아서 너무 웃겼다. 시트가 더러워지지 말라고 타올 씌워 놓은 노력이 가상하기는 한데 그 타올이 더 더러워서 옷이 더러워지는 건 왜 모르지? 정말 웃기는 사람들이다.
버스에 타서 출발을 기다리는데 짐만 놔두고 화장실도 못 가겠고, 배고픈데 뭐 사먹으러 나가지도 못하겠다. 이미 루앙프라방에서 시간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버스 출발 시간이 정해짐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불안해졌다. 이러고 꼼짝없이 남타까지 가게 생겼다. 언제 출발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배는 고파오고 화장실은 가고 싶고 정말 최악이다. 죽을 맛이다. 정말...
드뎌 움직인다. 출발하는가 보다. 허걱! 그런데 아까 내 옆에 앉아서 온 할머니 어느 새 또 찰밥과 꼬치를 사오셨네. 저 쪼그만 몸에 참 많이도, 잘도 드시네. 이번엔 쪼금도 안 나눠주고 혼자 다 먹는다. 쩝~~ 배고파라. 세상에서 젤로 치사한게 남 뭐 먹는거 쳐다보는 거라는데... 오늘 써니 팔자 정말 서럽다. T.T
도중에 자연 화장실 가라고 2번인가 버스를 세웠지만 도저히 길가에서 엉덩이 까고 실례를 하지 못하겠다. 결국 5시간 동안 죽게 참고 7시 30분 드디어 루앙남타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보았던 산간 마을에선 촛불이 하나, 둘 어둠을 밝히고 그나마도 안되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난 너무 늦게 도착하면 저녁도 못 먹을까봐 귤 1KG을 중간 휴게소 쯤 되는 곳에서 샀다. 근데 그것마저도 차안에서는 먹을 수 없었다. 수분섭취는 지금 이 순간에는 죽음이다, 죽음!
깜깜한 도시에 내려지고 보니 바로 앞에 MANY CHAN GH가 있다. 나는 너무 참기 힘들어서 거기로 곧장 체크 인 하려는데 루앙프라방에서부터 같이 온, 아니 정확히는 같은 트럭과 버스를 타고 온 호주인 부부가 욕실이 더럽다고 불평하며 딴 데로 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혼자 있기가 뭐해서 그들을 따라 나섰다. 제이미와 아미티는 지금 허니문 중이다. 지난 번에 방비엥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는 허니문이라서 25$짜리 호텔로 가던데 이 호주인들은 더 싼 GH를 찾나보다. 관점의 차이다. 허니문이니까 좋은 곳에서 자야한다는 사람과, 허니문이니까 어떤 곳을 가도 다 좋아보인다는 사람들...
어떤 chiness restaurant 겸용 여관이 보이길래 들어가니 1 person 당 8,000k이란다. 오호라~~ 대만족!! 버뜨... 가격만 대만족일뿐 샤워시설도 없고 목조 건물로 얼기설기 지어진데다 옆방에서 싸우는 소리, 쿵쾅거리며 계단 오르내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 한문으로 '옥화음식여관'이라고 쓰여 있는데 정말 끔찍하다. 하룻밤 묵고 떠나기에 망정이지...
체크인하고 호주인 부부와 저녁을 먹기 위해 another chiness restaurant에 갔다. 거기서 난 계란과 양파 볶음에 밥을 시켰는데 효정이가 해주던 계란 양파 볶음과 맛이 거의 흡사했다. 단 소금 대신 간장이 들어갔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맛있게 밥을 먹는데 아미티가 계속 콧물 찔찔에 재채기를 해댄다. 오늘 트럭 뒤에 타고 오느라 감기가 단단히 걸렸나보다. 거봐~~ 비좁아도 앞에 앉은게 천만 다행이지. 자꾸 콧물 닦는게 안쓰러워서 조제해 간 감기약 3봉지를 주었다. 음~~ 너무 많이 준 것 같다. 나도 몇 개 안 남았는데... 그래도 한인성하는 내가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암튼 맛있게 밥 먹고 얼른 숙소로 돌아와 씼을 생각도 안하고 걍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아예 배낭을 끌르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런 GH라면 낼 아침도 씻긴 글렀으므로 무앙씽에 도착하면 씻기로 하고 오늘은 빨리 자자는 심산이다. 9시! 돌아가던 자가발전기 소리가 멈추더니 방안의 백열등도 함께 꺼졌다. 재빨리 촛불을 켰고, 모기향을 같이 피웠는데 문을 꽁공 닫고 잠군 것이 꼭 질식사를 기도하는 꼴이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최악의 밤이다.
·GH(루앙프라방) - 55,000K ·툭툭 - 5,000K ·우돔사이 버스 - 22,000K
·루앙남타 버스 - 18,000K ·귤 - 3,000K ·저녁 - 7,00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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