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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알람이 필요없다. 저놈의 닭모가지를 그냥 확!! 암튼 계속 울어대니까 안 일어날래야 안 일어날 수가 없다. 커튼을 열어보니 아직도 깜깜한데 저 놈의 닭은 잠도 없나?
어젠 너무 피곤했는지 G.H에 들어오자마자 불도 안 끄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닭도 닭이지만 G.H 옆에 나이트 클럽이 있나? 밤새 돼지 멱따는 소리로 누가 생음악을 불러댄다. 죽을 맛이다. 정말 미치겠다.
지금 난 싸이요에 앉아 동쪽 하늘을 보고 있다. 건물 뒤에 솟아있는 야자 나무 위로 구름이 멋지게 드리워져 있고 그 사이 사이로 햇살이 곱게 부서지고 있다.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여기에 지금 1시간 10분째 앉아 있는데 눈이 아플만도 한데 둔해진건지... 그런데 자꾸 강아지가 명상을 방해한다. 강아지가 다가와서 내 다리에 비벼대는데 내가 전봇댄 줄 아나? 생기긴 귀엽게 생겼다만 난 원래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하긴 이런 나를 두고 우리 집 막내는 저승 가서 동물 학대죄로 벌받을꺼라고 했었다. 학대는 무슨 학대? 나는 그저 좋아하지를 않을 뿐인데...
오늘은 폰과 함께 통굴 트렉킹을 간다. 기대된다. 드디어 9시 30분! 투어를 신청한 다른 일행들과 함께 동굴 탐험에 나섰다. 비엔짱과 방비엥, 루앙 프라방을 잇는 13번 도로를 타고 폰의 뚝뚝으로 한참을 달렸다. 뚝뚝을 타고 가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군데 군데 있는 집들과 사람들의 인사 소리 '사바이디'를 듣는 것도 마냥 신났다. 다리도 건너고 비포장 도로도 달려서 우리는 드디어 동굴 입구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는 양초를 손에 들고 갔는데 모든 신경을 촛불 하나에 모으고 어두운 곳을 걷는다는게 장난 아니게 스릴이 있었다. 조명 시설 다 갖춰놓은 제주도의 만장굴을 걷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값진 경험이었다.
폰이 친절하게도 내 배낭을 자기가 매겠다고 고집했고 나도 그의 마음씀이 고마워서 수건 하나 달랑 들어있어서 무겁지도 않은 배낭이었지만 사양하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는 동굴 안을 기어가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기도 하면서 1시간 정도를 갔더니만 점점 물흐르는 소리가 가까워 온다. 그러더니만 글쎄 웅덩이에 수영을 해도 될 만큼 많은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닌가? 동굴 속에서의 수영이라니...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촛불을 바위 주위에 밝혀 놓고 수영을 했는데 1시간 동안의 강행군 후 땀에 젖은(난 정말 걸으면서 이렇게 땀 많이 흘려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여름이면 협재굴처럼 시원한 동굴을 찾아가곤 했었는데 동굴 안이 시원하다는 건 정설이 아닌가 보다. ^ ^;) 몸을 시원한 물에 맡긴다는 건 정말 기분 캡이다. 물은 굉장히 깊었지만 일행들 모두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즐거워했다. 함께 간 미국인 JERRY는 암벽 등반이 취미라면서 자꾸 가파른 절벽을 기어올랐다. 그러다가 채 1M도 못 오르고 물 아래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는데 그러면서 자기는 원래부터 다이빙이 하고 싶었다나? 거꾸로 하는 다이빙은 참 힘든 기술이라며 애써 쪽팔림을 무마하려 해보지만 정말 웃기는 수작일 뿐이었다. 우리 중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저 재미있어 했을 뿐이니까. 사실 그 가파르고 미끄러운 절벽을 오른다는 것 자체가 타잔이 아닌 이상은 힘든 일이었을거다.
한참을 정신없이 수영을 하다가 눈이 어둠에 적응되었을 즘 옆을 내려다 보았더니 손가락만한 물고기들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세상에나~~ 물 속이 다 들여다 보인다는 건 물이 그만큼 맑다는 뜻이겠지. 정말 AMAZING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폰은 빨리 잡아서 바비큐를 해먹자고 농담을 한다. ^ ^ 뭐 먹을 거나 있겠어? 저렇게 조그만데?
젖은 몸을 대충 닦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는데 이번엔 폰의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가게 되었다. 근데 워낙에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동굴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거니와 폰을 믿었기 때문에 그저 그의 발만 보면서 열심히 걸었는데 그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바로 뾰족한 종유석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방비엥의 모든 동굴은 석회암 동굴이다.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하던데 산방산을 좋하는 멍게가 보면 까무러칠 정도로 산세가 죽인다. 하지만 그 멋진 산세고 뭐고 간에 그 놈의 석회암 동굴에서 일분 일초 계속해서 자라나는 종유석에 머리를 박아서 피가 철철은 아니고 조금 났다. 무쟈게 아프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아파하면 자기 투어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 때문에 폰이 신경쓸까봐 그냥 괜찮다고만 했다. 흑흑~~ 대신 폰이 이상한 연고를 발라줬는데 어디서 많이 맡아본 듯한 냄새가 나서 내가 호랑이 연고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원숭이 연고란다. 알고보니 효능과 모양은 똑깥은데 뚜껑에 그려진 SYMBOL 마크가 호랑이가 아니고 원숭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원숭이 연고란다. 너무 웃긴다.
폰은 라오스 그리고 방비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는 자연 예찬론자이다. 1년 365일 거의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동굴 투어 가이드를 하는데도 싫증 내지도 않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다만 자기 일을 즐길 뿐이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원숭이 연고를 바르고 나서 2번째로 간 동굴은 DRY CAVE다. 그런데 그 동굴에서 내가 그만 봅슬레이를 타게 되었다. 한마디로 멋지게 미끄러졌단 소리다. 그래서 내가 여긴 DRY CAVE가 아니라 WET CAVE라고 했더니 모두들 웃는다. 그런데 이 DRY CAVE란 곳이 생각보다 종유석들이 정말 볼만 한 곳이었다. 흰색, 붉은 색, 검정색으로 색깔도 여러 가지이고, 여인의 가슴 모양, 커다란 코끼리 모양, 그위에 타고 있는 사람 모양 등 모양도 색깔도 가지가지였다. 그런데 동굴 위에서 아래까지 연결된 종유석들은 속이 비어 있어서 소리가 난다. 내가 즉석에서 '학교종'을 얼추 비슷하게 연주했는데 아무도 그 노래를 몰랐다. 흑흑~~ 그래도 내가 계속 드럼치는 시늉을 하자 모두들 시도해 본다. 이 동굴에선 이게 젤로 잼있는 것 같다.
한참 가다가 폰이 비춘 종유석이 꼭 만리장성 같이 생겼는데 폰은 중국 사람들이 이 모양을 보고 나서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정말 웃기는 사람이다. 자국 사랑도 이만하면 병적인 수준일거다. ^ ^;
동굴 탐사를 끝내고 강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폰이 점심을 준비했고 우린 또 강에서 수영을 했다. 필리핀에서 온 와이린과 내가 먼저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잠시 망설이던 제리의 여자 친구도 브래지어와 팬티 바람으로 물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배나온 독일인 앤디가 남자로선 유일하게 우리들의 물놀이에 끼어 들었다. 너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유감없이 수영실력을 뽐냈다. 자유형으로 가다가 평영을 하기도 하고, 버터플라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물 위에 누워서 하늘을 봤다.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다. 파란 하늘에 점점이 박힌 하얀 구름이 유유히 지나간다. 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모든 게 평화스럽기만 하다.
점심은 쇠고기와 야채를 함께 구운 꼬치구이와 볶음밥, 그리고 쏨땀(생선젖국), 바나나 구운거다. 쏨땀을 너무 많이 뿌려서 너무 매웠지만 수영하고 난 후 배가 너무 고팠던 터라 허겁지겁 맛있게 먹어치웠다. 갑자기 폰이 모두에게 위스키를 한잔씩 권했다. 음~~ 지독한 놈들! 세상에 날도 더운데 대낮부터 40도가 넘는 위스키라니.(하긴 나도 먹을 줄만 알면 먹겠다. ^ ^;) 폰이 내게도 권했지만 내가 계속 거절하자 반잔씩 마시잔다. 'FOR OUR FRIENDSHIP!' 이러면서...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있어야지. 가끔 회식 자리에서 1잔 놓고 고사지내 본 게 전부인 나인데. 그리고 멍게가 특히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싼 위스키는 그냥 화학주라고 하면서 마셨다간 몸 버린다고 했었는데... 이를 어쩐다? 어쩔 수 없이 폰이 마시고 준 반잔을 들고 망설이고 있는데 필리핀에서 온 제이시가 약이라 생각하고 그냥 마시란다. 위가 소독될꺼래나 뭐래나? 그리고 앤디는 어디서 배웠는지 '껀배'이런다. 에궁! 만인이 이렇게나 원하는데 부응해 줘야지. 단숨에 완샷! 윽~~ 죽을 맛이다. 근데 내가 위스키를 마시자 죽어가는 나를 보며 모두들 즐거워한다. 에고고 슬슬 추워지기 시작한다. 술마시면 나오는 증세... 한기가 느껴진다.
점심을 다 먹고 술기운 가라앉히며 휴식을 조금 취하고 있는데 앤디가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어온다. 난 올해 2번의 이산가족 만남이 있었고 더 많은 교류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조만간에 통일이 될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누가 독일인 아니랄까봐) 통일되면 남한은 북한을 위해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며 불평을 한다. 아마도 자기가 그랬나보지? 그래서 내가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러한 이유로 인해 통일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더니 이해할 수 있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한국이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자기의 견해를 덧붙인다. 정말 그럴까? 두고 볼 문제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김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몇 년 전 BUSINESS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 굉장히맵고 신 야채를 먹었는데 이름은 까먹었는데 맛이 환상적이었다나? 그래서 내가 그건 김치이고 세계로 수출되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라고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런데 왜 김치를 땅에 묻냐고 물어온다. 내가 김장은 겨울동안 먹을 김치를 만들어서 독에 넣고 땅속에 묻어서 저장하는 것인데 그래야만 봄까지 싱싱한 김치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더니 매우 놀라워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한국인의 지혜라고 했더니 그는 정말 대단하다고 야단이다. 사실 지금도 냉장고보다는 그렇게 땅에 묻어두는게 더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는 비법이라고 했더니 더 놀라워 한다. 짜식~. 뭐 이런 걸 가지고! 나는 또 김치의 여러 가지 재료에 대해서도 얘기해 줬고 만드는 방법도 대충 전수해 주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들었는데 그가 독일에 가면 정말 김치를 만들어 먹을지는 미지수다. ^ ^
우리는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몽빌리지를 향해 출발했다. 몽빌리지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거창하게 축제랄 것도 없다.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서로 공을 주고 받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폰이 말하기를 서로의 짝을 찾는 MACHING GAME이라고 한다. 일명 라오스식 '사랑의 짝대기'라고나 할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계속 공을 던져 주고, 만약 그 사람이 싫으면 공을 받지 않아도 된다. 나도 얼른 대열에 끼어 함께 해봤는데 내가 어떤 남자애의 공을 받을 때마다 모두들 '오우~'를 연발하며 야유룰 보낸다. 사실 난 그애가 좋다기보다는 공을 떨어뜨려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별거 아닌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모습이 참 보기는 좋았다.
몽빌리지를 뒤로 하고 마을로 돌아와 튜빙을 준비했다. 강의 상류쪽으로 올라가 튜브를 타고 내려오는 것인데 이것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 줄이야. 세상에 그 커다란 튜브에 앉아서 1시간동안 떠내려오는데 멀미가 날 줄이야. 나가고 싶어도 강물이 깊어서 나가지도 못하고 이 난국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면 계속 팔을 휘저으며 전진할 수 밖에. 흑흑~~ 결국 하류까지 도착하고 나서 난 점심 때 먹은 걸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피망이 둥둥, 파인애플이 둥둥~~. ^ ^;
난 정말 흐르는 물 위에 떠있는게 싫다. 배도 그런 흔들림이 덜 느껴지는 빠른 쾌속선만 좋아하고, 수영도 평영보다 빠른 자유형이 더 좋다. 오죽하면 롤러코스터 좋아하는 내가 바이킹을 다 싫어할까? 별다른 움직임없이 그렇게 반복되는 흔들림이 정말 싫다.
에고~~ 해골이야!! 제이시가 보다 못해 아스피린을 주었다. 고맙게스리. 해외에 나오면 이렇게 아스피린 한알에도 감격을 다 하나보다. 샤워를 하고 나서 싸이요에 가니 폰이 바비큐 먹으러 가자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상곤씨와 경혜씨도 함께 가자고 했더니 움직일 생각들을 안 한다. 알고보니 그건 개고기 바비큐였다. 헉! 라오스에 개고기라니? 이 나라 사람들에게 개고기는 최고의 음식이란다. 폰이 특별히 생각해서 그러는건데 차마 나까지 거절할 수가 없어서 혼자서 따라 나섰다. 또 일단은 여행을 왔으니 많은 걸 보고 느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잠자코 따라 나선 것이다. 멍게야! 여행 오기 전에 사준다던 개고기 네가 안 사줬잖아. 그거 내가 이 먼 나라 라오스까지 와서 먹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여기서도 이건 무지하게 비싸다는구나. ^ ^;
음~ 일단 바비큐라서 그런지 냄새는 좋군. 이곳에서도 우리 식으로 하면 들깨 비슷한 소스에 찍어 먹는데 이 놈의 고기 속에 왠 뼈가 이리도 많은 거야? 아마 이 개 한 마리를 장만할 때 도끼를 들고 아주 난도질을 한 모양이다. 별수없이 난 sticky rice만 열심히 주무르며 먹었다. STICKY RICE는 먹는 재미가 정말 좋았다. 손으로 밥 먹는 걸 늘 해보고 싶었는데 인도에 가기 전에 소원 풀었다. 집에선 양념 통닭 먹을 때 엄마한테 구박받으며 항상 손으로 밥 먹었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STICKY RICE를 그렇게 먹으니 거리낄게 없다. 오히려 밥이 더 찰지기 때문에 손으로 주무르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 수 있어 좋다. 밥을 먹으면서 내가 폰에게 어느 쪽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하냐니까 아무쪽이나 편한쪽으로 먹으면 된단다. 인도에선 왼손으로 밥 먹고 오른손은 화장실에서만 사용한다니까 오히려 그가 놀란다.
그런데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바비큐 고기를 폰이 이상한 풀(아마도 상추 대용?)에다 싸서 주는거다. 망할! 거절하지도 못하고 맛있다며 받아 먹었다. 그랬더니 폰이 갑자기 주인한테 뭐라고 쏼라거리니까 잠시 후에 바비큐는 아니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전골같은게 나오는 것이었다. 생강 냄새가 짙었고 들깨 대신 카레 가루를 뿌려댔다. 그런데 이게 그나마 맛이 괜찮았다. 부드럽고 푹 삶아서 왠만한 뼈는 다 발라져 있고 아마 개고기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정체를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폰과 운동 삼아 산책을 하기로 했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동네라고 해봤자 30분이면 볼 거 다보는 동네다.) 강가로 가서 대나무 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게 이 다리를 건너려면 1인당 통행료 500K을 내야한다. 다리를 지을 때 1,000,000,000K이란 거액을 들여 지었기 때문이라는데... 그런데 개인이 저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나서 지었을까? 그것도 아니고 나라에서 지었다면 돈은 왜 개인이 받지? 에궁~~ 모르겠다. 처음에 난 외국인만 내는 줄 알고 조금 눈살이 찌푸려졌는데 폰은 이 동네 사람들도 다 통행료를 낸다고 한다. 음~~ 다리가 어떻게 보면 대나무라서 운치 있기도 하지만 얼기 설기 지은게 도저히 1,000,000,000K이란게 믿어지지 않는다.
어쨌든 통행료가 있건 없건 간에 밤에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 다리를 건너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다리 중간 쯤에 갔을 때 사람들이 어두운 강물 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잡고 있는게 보였다. 폰이 조개를 잡는거라고 했다. 세상에~~ 이 밤에 조개라니! @@ 조개가 눈에 보이긴 보이는 걸까? 내 눈에 시커먼 물만 보이는데...
다리를 건너, 강 건너 쪽의 마을로 들어가니 온통 깜깜이다. 폰이 이 쪽 마을은 전기가 아예 안 들어온다고 했다. 맙소사! 지금이 어느 땐데 전기가 안 들어와? 가만 보니 사람들이 마당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갑자기 따뜻함이 느껴져 온다. 폰도 전기가 안들어오는 이 곳이 더 NATURAL하게 느껴져서 정이 간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자연예찬론자이다. 하긴 이렇게 불빛이 하나도 없으니까 하늘에 별이 더 많아 보이긴 한다. 산 위에도 걸려 있고, 논 끝에도 걸려있고... 밤 하늘을 한참동안 올려다 보려니까 목이 다 아플 지경이다.
어둠 속을 별빛에 의지해 걸으면서 폰과 나는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폰은 12년 동안 외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 러시아로 건너가서 5년 동안을 공부했고 성적과 집안 내력이 좋아서 그는 이후 파일럿 학교에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7년간을 PLAIN OF JAR(라오스 북쪽 지방)에서 공군 장교로 근무했다고 한다.
폰의 러시아 발음은 가히 예술이었다. 난 아무리해도 못 따라하겠다. 가장 쉬운 '스파씨바'라는 말만 겨우 따라할 수 있었다. 영어로 THANK YOU! 폰이 러시아어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하긴 난 불어 발음 할 때도 'R'(흐)가 잘 안되더라... ^ ^;
갑자기 폰이 방비엥에 더 머무를 수 없냐고 물어온다. 난 비자 기간이 15일로 한정되어 있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더도 말고 하루만 더 머무르란다. 그럼 자기가 관광객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더 멋진 곳을 보여 주겠다나? 아무래도 오늘 종일 그의 태도도 그렇고 FORM이 영 석연치가 않다. 이런 지나친 그의 친절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그에게 많은 걸 의지해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얼른 말머리를 돌리며 돌아가자고 했다. 아쉬워하는 폰을 뒤로 하고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도 뒤로 하고 먼저 성큼 성큼 앞서 갔다. 이내 폰도 뒤따라 왔고, 폰은 강변에서 LAO BEER를 한잔씩만 하자고 했다. 계속 거절하기가 미안해져서 어쩔 수 없이 해바라기씨를 안주삼아 뇩(건배)을 했다. 난 물소리를 듣고, 별들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 폰은 내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온다. 난 개인적인 거라서 말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그가 하도 애원을 해서 있다고 말해 주었다. 아~~ 순간 그 놈의 파키스탄 새끼가 생각 나는 거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그래서 내친 김에 남자친구와 곧 결혼할거라고도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한 술 더 뜬다. 자기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가 둘이지만 집에서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단다. 그래서 자기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이렇게 밖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이런 게 사는 이유라고 한다. 그러면서 차라리 서로를 위해서는 이혼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단다. 어라? 이렇게 밖에서만 지내는 게 아내나 가족들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하니까 아내는 자기를 이해할꺼라며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란다. 이거 정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걸?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 가장이 그러면 안된다고 했더니 자기 삶이 중요한거고, 자기 느낌이 제일 중요한 거란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개인주의적 사고가 물씬 느껴진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게 점점 부담스러운 것을 넘어 싫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빨리 가자고 계속 재촉하며 남은 맥주를 완샷해 버렸다. 그런데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해바라기씨를 까서 내미는 것이다. 내가 손으로 받으려고 하니 고개를 저으며 꼭 먹여주어야만 하겠단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내가 이겼다. 자고로 우리 아버님이 남자한테는 함부로 술을 따르지도 말랬는데...
아~~~ 여기를 빨리 떠나야겠구나. 이 좋은 곳, 방비엥을...
다시 다리를 건너 싸이요에 와 보니 상곤, 경혜, 인환씨가 왜 이리 늦었냐고 묻는다. 내가 어찌 이 긴 사연을 다 얘기하리요. 그냥 산책했다 둘러대고 오늘은 트렉킹을 해서 피곤하다고 한 후 얼른 G.H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파인애플 - 4000K ·엽서 - 5000K ·샌들 - 6000K
·TOUR FEE - 25,000K(폰이 나만 5000K 깍아줬다. 왕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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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31] 왕복 50KM 사이클링과 '쏘 디피 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