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문을 두드린다. 아침 7시! 인환씨가 해뜨는거 보러가자고 문을 두드리나 보다. 아~~ 더 자고 싶지만 매해 해오던 연중 행사인데 타국에서 빠뜨릴 순 없지.
인환씨와 함께 마을 뒤쪽의 활주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음~~ 그런데 해가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질 않는거다. 그 순간 갑자기 대학 4학년 때 과친구들과 성산일출봉에 해 뜨는거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도 오늘처럼 구름에 가려진 해를 보기 위해 2시간이나 꼭대기에서 기다렸었는데...
우린 구름에 가려진 해가 뿌려주는 햇살만 실컷 맞고 결국 그냥 MORNING MARKET을 구경하러 갔다. 허걱! 오늘은 드디어 좌판 위에 족제비까지 등장했다. 시장을 한바퀴 돌고 아침 메뉴를 고민하는데 인환씨가 해장국을 먹어야 한단다. 하긴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속이 말이 아니다.
기특한 인환씨! 잠시 기다리라며 G.H로 가더니 신라면 스프와 분말 가루를 가지고 나타난다. 우린 그걸 들고 레스토랑에 가서 YELLOW NOODLE을 주문하고 라면 끓이는 법을 WAITREES에게 10분 동안이나 설명했다. 그리고 추가로 BEEF와 야채 듬뿍이라고 했더니 방긋 웃으며 간다. 15분 후! 아~~ 이 그리운 냄새! 바로 향긋한 라면 냄새다. 행복해라. 국물부터 몇 모금 마시고 야채랑 면발도 후루룩, 후루룩~~. 앗! 그런데 이상 물체 포착! 이 배추벌레와 진딧물! 아무리 무공해라지만 이거 너무 하는거 아냐? 아마 지금까지 모르고 먹어 치운 것만 해도 수십마리는 될 것 같다. 음~~ 갑자기 식욕이 뚝! 저 아까운 라면 국물!! 흑흑~~~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내가 킵이 없어서 인환씨가 대신 계산을 했다. 스프까지 제공했는데 계산까지... 염치가 없어져서 혼났다.
G.H에 돌아와서 나는 곧바로 곯아 떨어졌다. 인환씨도 하루종일 잘꺼라며 GH로 돌아갔다. 얼마나 잔 것일까? 한참을 맛있게 자고 눈을 떠보았더니 벌써 오후 2시다. 이런~~ 이러다간 한해가 방탕하게 술만 마시고 잠만 자는 게으른 삶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새해 첫날부터 이럴 순 없지.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며 무얼할까 머리 속에 그려본다.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는다. 다시 한번 천천히... 결국 며칠 전에 폰과 함께 산책갔었던 강건너 마을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결심이 서자 나는 빠른 속도로 가방에 물, 카메라, 썬글라스 등을 챙겨넣고 길을 나섰다.
아무래도 혼자가는 게 겁이 나서, 출발하기 전에 인환씨의 GH에 들렀으나 인환씨는 2시간은 더 자야겠다며 눈도 제대로 못 뜬다. 음... 할 수 없이 혼자 자전거를 빌려서 다리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자전거가 있어서 다리 통행료는 2배나 받는다. 우쒸... 낮이라서 그나마 운치도 없구만.
마을을 지나 논길을 달려서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동굴 입구가 나온다. 동굴은 가파른 돌산 중턱에서 아래쪽으로 나 있었기 때문에 일단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암벽 등반을 해야만 했다. 너무 힘들어서 동굴 입구에 다달아 조금 쉬고 있자니 밑에서 보았던 왠 놈이 따라올라오고 있었다. 순간 겁이 더럭 났지만, 순진하게도 난 이 녀석이 가이드인가 싶어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랜턴을 들고 들어가려니 이 녀석, 자기가 들겠다며 따라 들어올 채비를 한다.
동굴 안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한국말로 계속 '음, 쥑인다' 이랬더니 이 놈이 또 뭐라고 쏼라댄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녀석도 알아들으라고 영어로 'BEAUTIFUL!'이라고 외치면서 종유석을 두드려 자진모리 장단을 연주했다. 종유석의 생김새가 멋있는게 아니고 종유석의 소리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녀석이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만 누런 이를 드러내며 'YOU BEAUTIFUL'이란다. 어디서 주워 듣긴 주워 들은 모양인데 문법이 엉망이군 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암튼 이쁘다고 하는데도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는 이 컴컴한 동굴 안에 저 녀석과 나만 있다는 공포감 때문일까?
갑자기 이상한 녀석 때문에 기분이 잡치는 바람에 그 어두운 동굴 속을 거의 뛰쳐나오다시피 하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내가 너무 순진했었다. 와 본 적도 없는 동굴 안을 그런 미친 녀석과 같이 들어왔으니... 도망치다가 막다른 곳에 갇히게 되었다.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랜턴은 저 녀석이 들고 있고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뛴다. 내 심장소리에 내 자신이 더 놀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어느새 이 놈이 따라와서 내 목을 감고 입술을 들이민다. 미친 놈!!! 목에 감긴 손을 있는 힘껏 깨물어 주고 그를 밀쳐낸 후 호신용으로 달고 다니던 호루라기를 불며(하긴 이거 듣고 달려올 경찰도 없지만 그 순간엔 왜 그리 절실하던지...) 사다리를 타고 동굴 밖으로 빠져 나와 산 아래로 거의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정말 기분 DIRTY했다. 쒸발~~ 의사 선생님이 산에서 내려올 땐 허리에 무리가 가니까 특히 조심하라고 했지만 그런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판국에 허리의 고통을 느낄 여유가 있을리 없지.
암튼 동남아 와서 양효선 확실히 주가상승하고 있군. 모든 남자들이 나만 보면 사족을 못쓰니...
그런데 동굴 입구에선 한 패거리들이 내 자전거를 둘러싸고 가지 못하게 막아서고 있다. 돈을 내라는 거다. 내가 저 동굴이 너희들꺼냐고 하며 악을 써봤지만 막무가내다. 입장료라면 내가 들어갈 때 달라고 했어야지 하면서 자전거를 빼앗으려고 해봐도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는데 아까 그 재수없는 놈이 산에서 내려온다. 나는 다급해져서 그 패거리에게 '타오다이(얼마야)?'하고 물었고 그들은 '하판(5,000K)!' 이랬다. 더럽고 치사했지만 그냥 그 돈 주고 꽁지빠지게 소굴을 빠져 나왔다.
오는 도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억울하고 분했다. 그리고 온몸이 떨려서 패달이 잘 밟아지지도 않았다. 하마터면 동굴 안에서 여자 인생 종칠뻔 했다. 휴~~아찔하다. 이러니 여자 혼자는 이런 거지배낭여행은 힘들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런 것쯤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너무 무서워진다.
앗! 그런데 주머니에 바나나를 사고 남은 돈 8,000K이 없어졌다. 아마 동굴에서 몸싸움할 때 떨어졌나 보다. 어떤 놈 오늘 정말 땡 잡았네. 만장굴처럼 정돈 잘 해 놓은 탐장 동굴도 4,000K인데 정돈도 안되고 위험하기 짝이 없고 색마가 기다리는 동굴을 5,000K이나 주고 들어갔다 왔으니 양효선 성질에 얼마나 열받겠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돌아오는 길의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잠시 놀란 마음도 진정시킬 겸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가방을 뒤져서 사탕을 꺼내 나누어 주었다. 모두들 수줍어 했지만 좋아하는 눈치였다. 몸을 베베꼬며 사탕을 조심스럽게 받아드는 모습들이 너무 귀엽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모두들 도망간다. 겨우 달래고 얼러서 배경 좋은 곳에 세워 놓으면 다시 흩어지고... 몇번을 그런 숨바꼭질을 하고 생각해보니 애들은 나와 이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결국 딱딱한 포즈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애들에게 엄지를 치켜 올리자 모두들 나를 따라 엄지를 치켜 올린다. 좋았어~~ 찰칵! 이번엔 V를 손가락으로 그려보였더니 모두들 똑같이 따라서 V를 그린다. 또 찰칵! 훌륭한 사진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직업병인가? 아니면 누구든지 저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라껀(안녕).'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6시까지는 자전거를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으로는 시간을 넘겨 추가요금을 내고 싶지 않다.
다리를 건너오는데 강둑에서는 아직도 LOCAL FESTIVAL이 한창이다.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축제장을 기웃거리는데 누가 '안녕하세요?'하는 거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윤씨 아저씨'라는 분이 인사를 건네온다. 내 얼굴에 한국인이라고 적혀 있나? 모두들 나를 라오스 사람이라고 하던데 나를 한국인으로 봐주는 사람도 다 있네. 아저씨는 나의 옷차림이 한국인이라나? 후후..
저녁 약속을 하고 자전거를 반납한 후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싸이요에서 아저씨를 기다렸다. 매일 먹는 볶음 국수가 지겨워진 나는 쌀국수 잘하는 집 알면 데려다 달라고 했고 아저씨는 이런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음~~ 역시 국물도 시원하고 면발도 쫄깃쫄깃~~ 맛있다. 메뉴판에 맛있고 값이 저렴한 식당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고 값도 훨씬 저렴하다. 작은 구멍가게 같은 식당이었고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 곳이었지만 정말 맛있고 주인 아줌마도 친절했다.
아저씨는 캄보디아에서 5개월이나 있다 오셨고 라오스를 거쳐 중국 국경을 넘을거라고 했다. 혼자하는 나의 여행을 걱정과 함께 격려해 주셨고 캄보디아에 가면 글로벌 GH의 권사장님께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서 우린 헤어졌다.
아저씨와 헤어지고 다시 싸이요에 와보니 밤새 난리가 났었다는 소식을 상곤, 경혜씨로부터 전해 듣는다. 어젯밤 만취한 폰이 뚝뚝을 운전하다가 대나무 숲에 박치는 바람에 뚝뚝이 심하게 망가졌단다. 폰을 내버려 두고 와서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 순간 이마 양쪽에 파스를 붙인 폰이 나타났다. 머리가 아파서라나? 이 사람이 파스가 무슨 만병통치약이라고 머리 아프다고 그걸 거기 붙이나... 쩝. 폰은 자리에 앉자 마자 나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자기를 버리고 가서 내가 너무 밉단다. 나도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지만 그는 이미 내 힘으로도 인환씨의 힘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했었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망가진 뚝뚝을 생각하면 다시 미안해졌다. 폰의 말처럼 뚝뚝은 그의 삶 그 자체이고, 그의 심장과도 같은 소중한 것인데 그것이 망가졌으니... 감정이 북받쳤는지 갑자기 눈물이 글썽인다. (내가 아니라 폰이.) 나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어제의 상황을 폰에게 설명했다. 조용히 듣기만 하던 폰이 우리를 뿌리치고 갔다는 얘기가 나오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I'M SHY.'를 연발하며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나도 갑자기 답답해졌다. 고개를 돌려 인터넷 하는 사람들을 보니 갑자기 한국에다 생사를 알려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나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런~~ 달리 언니의 메일을 열어봤더니만 나 대신 우리 교감한테 한소리 들은 모양이더군. 우리 교감 선생님 또 한번 내 피를 말리는군. 분명히 당신 입으로 '어학연수 간다'하라고 하셨으면서, 그리고 방중 해외 외출 신고서는 나 대신 잘 써주겠다고 하셨으면서 이렇게 배신을 땡기나? 난 분노에 치를 떨며 답메일을 보냈다. 대충 달리 언니에게 사태를 대신 처리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띄웠는데 부디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막내에게도 잘 있다고 메일을 날렸다. 얼마나 느린지 메일 하나 체크하고 두 개 보내는데 38분이나 걸렸다. 이게 다 돈인데...
나는 폰의 지나친 관심과 오늘 낮의 동굴 사건 등으로 인해 생각보다 이틀정도 빠른 내일 루앙프라방으로 떠날 결심을 굳혔다.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인환씨가 안 보인다. 에궁~~어디 간거야? 어쨌든 상곤, 경혜씨는 조심하라고 하면서도 자기들과 함께 비엔짱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그러나 양씨 고집을 누가 이겨? 이번에는 폰이 하루만 더 머물란다. 그러면 어제 일도 사과할 겸 자기가 더 멋진 곳을 보여주겠다나? 새로운 투어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내일은 다른 동굴 CHECKING을 하러 간단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했고 더 이상은 폰의 이런 관심과 부탁이 부담스러워질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그림 엽서를 폰에게 선물로 주었고 한국에 가면 이메일과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모두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인환씨가 그때서야 일어났다며 어술렁거리며 다가온다. 점심도, 저녁도 안 먹었다고 해서 나는 아까 내가 먹은 쌀국수집에 그를 데리고 갔고, 다행히 그가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는 그냥 헤어지기가 아쉽다며 닭다리 꼬치 2개와 LAO BEER 2병을 사서 페스티발이 열리는 공연장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과 안주를 먹으면서 우리는 쇼를 구경했다. 유치하고 재미도 없었지만 그 공연장에 있는 젊은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어댔다. 정서가 이렇게 달라서야 원...
인환씨는 내일 떠나는 나의 새로운 여행을 걱정해 주었고, 한국에 돌아가면 대학원 공부도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라면서 괜히 어른인체 한다. 한 살 차이밖에 안나는 주제에... ^ ^;
나는 인환씨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적었고 한국에 가면 꼭 메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남은 맥주를 마시고, 인환씨와 강을 건너 낮에 내가 갔던 마을 쪽으로 산책을 갔다. 낮의 일을 생각하면 강건너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지만 지금 여기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화스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역시 불빛이 없는 곳이라 그런지 이곳엔 별이 훨씬 더 많다. 또 한참을 넋을 잃고 별을 바라보았다.
걸으면서 인환씨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제 26살이네, 27살이네 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강 건너 마을엔 3번째이지만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 무섭고, 힘들었던 기억보다 이 편안한 느낌을 오래 오래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다리를 건너 통행료를 내고 한참을 걸어서 GH까지 인환씨가 바래다 주었다. GH에 돌아와서 나는 대충 내일 떠날 채비를 했다. 짐이라고 해 봤자 배낭 하나 달랑이지만... 이렇게 방비엥에서 마지막 밤을 접는다.
·자전거 대여 - 5,000K ·바나나 - 2,000K ·다리 통행료 - 2,000K ·잃어버린 돈 - 8,000K
·동굴 입장료 - 5,000K ·꼬치 - 11,000K ·쌀국수 - 4,000K ·물 - 1,500K
·인터넷 이용료 - 9,00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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