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25분! 떠날 채비를 마치고 경신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호찬 오빠가 함께 가잔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래서 편하다. 자기가 떠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짐 싸들고 가면 되니 말이다. 정말 정말 부럽다.
이렇게 해서 우린 넷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북부 터미널로 향한다. 새벽 공기가 코끝을 상쾌하게 만든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아란으로 가는 첫 버스 티켓을 끊는데 그새 20B이나 올라서 164B이나 한다. 망할~~ 그것도 144B짜리 티켓에 걍 두줄 긋고 164B이라는 스탬프만 찍어서 말이다. 도둑놈들!
티켓을 끊고 나는 호찬 오빠와 컵라면을 먹었다. 아마도 어제 저녁 8시쯤 먹은 죽이 이미 소화가 다 되어버린지 오래인 것 같고, 인환씨랑 마신 하이네켄 1병의 기운이 아직 덜 해독된 것 같았기 때문에 컵라면은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였다.
드뎌 새벽 4시 30분! 버스에 올랐고 우리의 예상(30분은 지연될꺼라 생각했는데...)을 뒤엎고 5분만에 출발한다. 이럴수가~~ 이건 정말 드문 일이다. 어쨌든 좋아라, 좋아라 너무 좋아라~~ ^0^
차에 오르자마자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지만 곧 깨어날 수 밖에 없었다. 왜?!?! 무식하게 틀어대는 에어컨 때문에...T.T ~~~ VIP 버스는 알아서 적당히 에어컨 틀어주기 때문에 그다지 춥지 않아 좋았는데 바로 한 레벨 낮은 이 버스(에어컨 1등 버스)는 무식해도 보통 무식한게 아니다. 세상에 뼈가 다 떨리네! 부르르... 그런데 경신 언니는 네팔에서 샀다는 거적대기(숄이었나? ^ ^;)를 머리끝까지 덮었고, 영희 언니는 그제 설에서 가지고 온 파카를, 호찬 오빠는 늘 가지고 다니는 미니 침낭을 덮고서리 땀따지 흘리며 자고 있는거다. 흑흑... 짐 줄일라고 입고 있던 반바지, 반팔티 차림으로 그냥 나왔는데 정말 미치겠다. 우던타니 갈 땐 담요주던데 오늘은 담요도 안 주네. 쩝... 결국 난 태고적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처럼 몸을 최대한 둥그렇게 웅크린채 잠을 정해보지만 1시간 간격으로 눈이 계속 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에궁~~ 운전사 아저씨 자기 잠오니까 잠 쫓을라고 이 새벽에 에어컨 팡팡 트셨나? 자기 잠만 쫓으면 됬지, 왜 남의 잠까지 다 쫓냐구여?
어쨌든 4시간만에 아란(아란야프라텟)에 도착했고 우린 뚝뚝이 하나를 50B에 계약하고 국경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때 보니까 국경 근처에 시장이 있다는 정보를 읽은 기억이 나서 시장이 보이자 나는 자신있게 뚝뚝이 아저씨한테 'STOP!'을 외쳤다. 허걱~! 그런데 거긴 시장 입구였고 국경까진 또 7분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나 때문에 졸지에 따라 내린 일행에게 미안해서 죽을 뻔 했다. 어쨌든 우린 국경 근처 시장에서 대충 아침을 먹었는데 정말 맛없다. 으웩~~~ 카오산 거리 노점상의 볶음 국수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마지막으로 물과 점심 대용으로 먹을 귤을 사고 THAI BOADER로 떠난다.
쾅! 출국 스탬프를 찍고 용감하게 캄보디아 국경으로 간다. 이젠 비자 만들고, 입·출국 수속 밟는게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처음에 라오스 들어갈 때 우정의 다리에서 긴장하고 쩔쩔매었던 거 생각하면 웃음이 다 나온다. ^ ^
헉~~ 그런데 VISA FEE가 20$인 줄 알았는데 이것들이 1,000B을 요구한다. 죽어도 그럴 수 없다는 의지로 버티는데 패스포트를 돌려주며(완곡한 표현으로 돌려주는 거고 내보기엔 던지는 수준이었다.) "YOU GO BACK!!" 이런다. 허걱!! 할 수 없이 얌전히 여권과 함께 1,000B을 내밀었다. 흑흑~~ 솔직히 캄보디아 공무원 평균 월수입이 20$이란다. 그리고 이 20$은 그들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적으로 부업을 1, 2개씩 가지고 있는 실정이고 또 심한 작자들은 이렇게 공식적인 만행(공식적으로 웃돈을 요구하는 것)을 저질러가며 수입을 올리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쒸~~ 한정의 양효선! 성질 많이 죽인다.
우여곡절 끝에 비자 스탬프를 받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데 어떤 녀석이 우리보고 체크할 게 남았다며 따라 붙는다. 보나마나 검역 신고서랑 세관신고서 쓰라고 해서 또 돈뜯어내려는 수작일테지... 짜식! 다 알어. 무시하고 계속 전진!! 앗! 그런데 이 자식이 갑자기 태도를 싸악 바꾸더니 시엠립 갈꺼냐며 자기가 차가 있다면서 다시 접근을 하는 것이다. 교활한 자식!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재수가 없어서 그냥 무시하는데 100M를 끈질기게 따라오며 귀찮게 군다. 한방에 코를 납작하게 해 줄려고 말도 안되는 가격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시소폰까지만 갈껀데 얼마에 할래?' 하니까 '특별히 너희들한테만 80B에 해줄게.' 이런다. 웃기는 놈! 어제 바로 인환씨가 60B이 적정선이라는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이 놈이 누구 등을 쳐먹을라고? 그래서 내가 '40B에 하자!' 이랬더니 이 놈이 '80B이 젤 싼거야.'이런다. 그래서 내가 '알았어. 여기 차 많으니까 다른 데 가서 알아볼게.' 했더니 얼굴이 금새 굳어지네 그려. 쬐끄만(사실 내 몸이 그렇게 쬐그맣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 ^;) 동양 여자 아이한테 이외로 한방 먹은게 타격인가 보다. 그러니까 상대를 잘 골라야지. 짜식이~~!
근데 이 놈이 다시 무슨 결심을 했는지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와서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훼방을 놓는다. 40B에 합의를 다 보아놓으면 느닷없이 나타나서 그 운전사와 자기네 말로 뭐라고 쏼라대기만 하면 이 운전사 태도가 홱 달라져서는 다시 80B이란다. 뭐야? 이 자식! 사기꾼 같으니라고...
난 이 녀석을 캄보디아 국경 PICK-UP 트럭 노조 위원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 뒤로도 계속 모든 운전자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얼마냐고 물어봐도 선뜻 대답을 못하는거다. 결국 그렇다면 이 노조위원장과 결판을 내야 한다는거군. 어떻게 하다보니 흥정을 내가 하게 되었는데 내가 또 한정의 구현을 위해 '사기'를 방관할 수는 없지. 시간은 많았으므로 다시 40B에 하자고 했더니 70B에 해주겠단다. 그걸론 안 되지. 난 몇차례 더 40B을 고집하다가 못이기는 척 50B을 불렀고 그랬더니 60B에 해 주겠단다. 이 과정에서 이 녀석 나하곤 좋은 값에 협상 못할거 같았는지 착하게 보이는 호찬 오빠에게 접근하는데 내가 가만 있을쏘냐? 결국 우린 4명이서 INSIDE 뒷좌석을 한 사람당 60B을 내고 가기로 했다. 근데 우린 원래 시소폰에서 갈아탈 생각이었는데 차에 오르자 이 노조위원장 시엠립까지 갈껀데 싸게 해주겠다고 자꾸 꼬신다. '얼만데?' 하니까 '225B'이란다. 어제 인환씨에게 240B 정도면 괜찮은거라고 들었기 때문에 내심 만족하며 조건을 제시했다. 4명이서 INSIDE-SEAT에 앉아서 가고, NON-STOP으로 시엠립까지 가서 글로벌 GH에 도착하면 돈을 주겠다고 말이다. 이 녀석 순순히 OK한다. 그런데 세상에 한 10M를 가더니 이 노조위원장 차에서 내려서 어떤 순진하게 생긴 아저씨에게 운전대를 넘긴다. 결국 이 녀석은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흥정맨이었을 뿐이었다. 쩝...
앗! 그런데 시소폰까지 오니까 차가 멈추고 또 어떤 녀석이 다가와서는 차를 바꿔 타란다. 내가 항의해 보았지만 영업 구간이 달라서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버티는 녀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대신 조건은 똑같다나?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런 녀석들이 이렇게 영어로 손님을 끄나본데 난 이놈을 노조부위원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근데 이 녀석이 글로벌 GH가 아니라 씨엠립 어디까지만 가겠단다. 그래서 '좋아. 그 대신 우린 돈 안 낼거야. 우린 GH까지 데려다줘야 돈 줄거니까!'했더니 또 사색이 되어서 알았단다. 이것들이 감히 날 어찌 보고...
근데 바꿔 탄 차는 먼저 번 차보다 차폭이 더 좁고 에어컨도 고장인지 무쟈게 덥다. 땀이 삐질삐질 나고 한시간이 지나자 엉덩짝은 너덜거리고 바지가 땀 때문에 축축해져 온다. 그렇게 또 한낮의 원치않는 사우나를 하며 땀을 비오듯 쏟아낸다. 등줄기 사이로, 가슴 사이로 땀이 계속 흘러내린다. 여기가 동남아라는게 오늘에서야 실감이 난다. 비포장도로라서 먼지 때문에 문을 열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다. 차 안에서 땀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윽!
설상가상으로 어젯밤 늦게까지 산적 아저씨랑 술을 마신 영희 언니와 며칠 째 잠을 제대로 못 잔 호찬 오빠가 차 안에서 계속 잠을 자면서(조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자는 거다.) 몸의 균형을 못잡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비좁아 죽겠는데 자꾸 몸을 밀착시켜 오니까 덥고 짜증나고 허리 아프고 미치겠다. 근데 결정적으로 영희 언니가 몸을 날려 내 머리에 헤딩을 한다. 악~~!! 정말 사람 잡네. 이에 뒤질세라 조용하던 경신 언니가 창문에 머리를 '쿵'하고 박는다. 그 바람에 운전수 의자에 머리를 계속 박고 있던 호찬 오빠도 잠에서 깨어 난다.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였다. 창문은 다행히(^ ^;) 부서지지 않았고, 잠에서 덜 깬 경신 언니는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는 듯 했다. 에궁~
난 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나를 놀래킨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소떼들이 풀을 뜯고 듬성 듬성 야자수가 높이 솟아 있으며 어디 사막에서나 봄직한 키작은 풀더미들이 나지막히 앉아 있다. 그런 초원이 지루해 질 때 쯤이면 논둑 고인 물에서 아이들이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모습이 보이고, 한바탕 이런 풍경들이 지나가고 나면 갑자기 키크고 푸른 바나나 나무들이 많아지면서 마을로 들어선다. 그리고 마을을 빠져 나오면 여기가 사바나 기후지대도 아닌 것이 분위기는 꼭 아프리카처럼 가젤이라도 몇 마리 뛰어 다녀야 될 것 같은 초원이 다시 펼쳐진다. 나도 어제 잠을 못자긴 마찬가지이지만 혼자서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몰입하다보니 느닷없이 도로로 뛰어드는 물소 한 마리조차 정겨워진다. 이 사람들아!! 제발 깨어나서 이 대지를 좀 보라고...
천신만고(?) 끝에 글로벌 G.H에 도착했다. 들었던 것처럼 '죽음의 길'이니 '지옥의 길'이니 하는 것은 아마 도로 사정이 나빠서라기 보다는 개인적으로는 5시간, 6시간 동안 시속 20KM를 넘지 못하는 PICK-UP트럭의 더운 내부에 앉아 땀을 흘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게 더 지옥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 정도 도로는 이미 라오스에서 맛보았기 때문에 나한테는 오히려 가뿐했다. 허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말이다.
G.H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우린 허겁지겁 식사부터 주문했다. 사실 점심 대용으로 먹으려고 샀던 귤이 배낭과 함께 짐칸에 있었으니 우린 아침 나절에 그 맛없는 국수를 먹은 이후로 내내 굶은 것이다. 흑흑~~ 결국 우린 김치찌개와 비빔밥을 시켜서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먹어치웠다. 정말 순식간에...
식사가 끝나고 나서 우린 도미토리를 체크인 했고 샤워를 했다. HOT SHOWER는 아니였지만 이젠 냉수 샤워도 할 만하다. 샤워를 끝내고 나서 앙코르에 대한 자료를 읽으려다가 먼저 일기를 쓰기로 했다. 모두들 뭐하냐고 묻길래 소설쓴다고 해두었다. 집에 돌아가면 이 소중한 기억들을 잊어버릴까봐 이리도 자세히 적어두는가 싶다. 나 자신도...
내일부터 우리는 TOUR를 하기로 했다. 4명이서 차 한 대를 빌리기로 했는데 이제 자료를 읽어보고 나도 공부 좀 해야겠다.
알고보니 호찬 오빠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단다. 그래서 우리보단 힌두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적 사상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많다. 그리고 경신 언니는 계속 앙코르 사원과 힌두교 신화에 얽힌 이야기들이 재미있다며 난리다. 내일은 정말 가슴으로부터 앙코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갑자기 경신 언니가 수박 쉐이크가 먹고 싶다고 해서 우린 다 밤거리로 몰려 나갔다. 앗! 그런데 우린 캄보디아 돈 리엘이 없고(사실 달러로 냈어도 됬지만...) 쉐이크 장수한텐 수박이 없다. 경신 언니는 수박 쉐이크가 아니면 안된다고 해서 우린 그 먼(?)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만 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환율을 알아보니 1$=3,900RIEL이란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달러를 쓰는게 유리하다나? 캄보디아인 자체가 달러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는데 난 참 그게 싫게 느껴진다. 우선은 자국민이 자국의 화폐 가치를 스스로 평가 절하시킨다는 게 싫었고, 먼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지금 당장의 생존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싫다. 하긴 산적 아저씨가 말했던 게 생각난다. 폴포트가 지식인 200만명을 학살해 버려서 남아있는 600만명 중에는 미래를 내다볼 만한 식견을 가진 자가 없다고... 우스운 얘기라 여기면 한없이 우스운 얘기지만 갑자기 참 무서운 얘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나라를 이토록 긴 세월 동안이나 가난에 허덕이게 만든 그 작자가 참 미워진다.
갑자기 영화 '킬링필드'의 장면들이 생각나서 얘기했더니 모두들 그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잘 기억이 안 난단다. 그러면서 이토록 잘 기억하는 나는 폴포트한테 즉석 총살감이라며 놀린다. 음~ 우리가 지금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남의 나라의 한 시대의 엄청난 사건을 얘기하고 있지만 당시의 상황을 겪어야만 했던 사람들은 생각만해도 얼마나 몸서리쳐질까?
오늘 국경을 넘어 시엠립까지 오면서 보았던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다리가 잘린 사람, 팔이 붙어 버린 사람, 걷지조차 못하고 구걸해야만 했던 사람들을...
·컵라면 - 15B ·아란 버스 - 164B ·물+티슈 - 23B
·뚝뚝 - 50B ·아침 - 20B ·귤 - 30B
·VISA FEE - 1,000B · PICK-UP TRUK - 225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