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이 떠진다. 2층에서 자던 경신언니가 내려오면서 발을 헛딛는다. 암튼 몸으로 소리내는 건 젤 왕이다. 그것도 망가지면서...
6시 30분이다. 얼른 세수하고 바게뜨 빵과 잼, 버터, 커피로 아침을 먹는다. 곡기가 빠지니까 먹은 것 같지도 않다.
7시 30분에 앙코르를 향해 떠나기로 했는데 우리가 탈 차를 어떤 팀이 가로채서(사실은 이 팀의 의사가 사장님게 잘 못 전달되서 차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거다.) 우리 1시간 정도를 더 기다리게 되었다. 그 동안 난 책꽂이에서 '김영희'씨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라는 책을 뽑아 마당의 등나무 침대에 누워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에 어떤 동경같은 것이 생겨났다.
고집과 겸양... 처음 몇 페이지에서 내가 느낀 그녀의 모습이다.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내세울 수 있는 여자! 예전에 '한비야'씨의 책을 읽을 때는 늘 내가 갈망하던 자유로움과 이지스러움, 그리고 그 아집이 좋았었는데... 이제 김영희라는 사람의 당당함과 겸손함을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드뎌 사원으로 출발한다. 차가 에어컨도 빵빵하고 내부도 넓은게 무쟈게 좋네. 촌년 승용차 구경 처음하는 것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는 먼저 입장권을 구입해야 했다. 3일에 40$! 예전에는 7일권(60$)사서 2명이서 나눠 보기도 했다던데 지금은 즉석에서 싸진을 찍어서 코팅까지 해주기 때문에 전혀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원 입구에서 꼬박 꼬박 검사를 하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권으로는 입장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새까맣게 탄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영락없이 동남아시아인이다. 그래도 입장권이 멋있어 보여서 좋다.
입구에서 또 한참 차를 타고 가다보니 넓은 해자와 성벽 너머로 앙코르 왓이 보인다. 그 앙코르 왓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서 눈도장을 대충 찍을 때쯤 우리는 거대한 얼굴이 새겨진 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앙코르 톰이다. 해자에 걸쳐진 다리 난간에는 54명의 악마와 신이 머리 일곱 달린 뱀인 나가를 붙잡고 있다. 앙코르 톰은 '위대한 도시'라는 뜻으로 자야바르만 7세가 세웠다는데 입구의 거대한 얼굴은 바로 관음 보살의 얼굴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이 곧 부처가 환생한 왕이라며 자신의 얼굴이 관음보살과 닮았다고 주장했단다. 아마 자신을 신격화하고 싶었나 보다. 동서남북 4면에서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관음보살이 웃고 있다. 그 입구를 지나 다시 차를 타고 1KM쯤 더가서 내린 곳은 바이욘 사원 앞이었다.
바이욘 사원 1층에 들어서면 사원 외벽에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게 전쟁을 비롯한 일상 생활들을 세밀하게 묘사해놔서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케 한다. 그러나 그 놀람도 잠시... 무너진 돌들을 건너 3층으로 올라가니 여기도 관음, 저기도 관음! 관음 보살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거대한 관음 보살이 하나의 돌덩어리로 조각된 것이 아니라 작은 돌덩이들을 쌓아 올려서 그것을 다시 조각했기 때문에 마치 모자이크를 짜맞추기한 것처럼 신기하다.
돌에 낀 이끼나, 무너져 내린 돌들이 흘러온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고, 도대체 이 많은 걸, 그것도 이렇게 세밀하고 훌륭하게 어떻게 조각했는지 감탄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절대 왕권의 상징이듯 이렇게 거대한 사원을 짓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여야만 했을까? 왕은 권력을 과시하고 백성들은 날로 피폐해져가고...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됬을까? 그들이 만들어 놓은(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이 위대한 업적이 대단하다는 찬사보다는 당시의 아픔들이 느껴진다고 하면 나만의 과대망상일까? 어쨌든 난 한참을 관음보살상을 마주하고 서있어 본다. 웃는 모습이 모두 같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하긴... 같다고 해도 놀랍고, 같지 않다 하더라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바이욘 사원을 나와 메루산의 모습을 형상화화한 바푸온으로 가면서 바이욘의 관음보살상 미소를 닮아보려고 미소를 지어봤다. 잘 안된다. 에궁~~. 바푸온은 앙코르 톰이 건설되기 이전 당시 존재했던 도시의 정중앙에 있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바푸온은 한창 보수 공사중이었다. 여기 저기 포크레인, 기중기들의 모습이 보이고 쌓아놓은 철근 구조물들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다. 내가 '저거 내년이면 다 보수될까?' 이랬더니 호찬 오빠가 죽은 크메르 왕국 사람들을 살려내서 다시 짓는게 더 빠를거라고 농담을 해서 다함께 웃는다. 사실 현대 과학으로는 이런 사원을 200년이 걸려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옛날 크메르인들은 30년만에 지었다고 하니 정말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신 언니는 이 사원들이 힌두교의 영향이라 하지만 정작 인도에는 이런 양식이 없단다. 그래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가? 그리고 이런 돌들이 이 주변에는 없는데 어디서부터 왔는지... 정말 불사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바푸온을 돌아나와서 오른쪽에 있는 피네마나까스에 갔다. 천상의 궁전이란 뜻인데, 그 옛날 왕은 이런 높은 곳에 있으면서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을까? 우기 때에는 해자가 가로 놓여서 못 올라갔다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다행히 지금은 건기여서 해자가 말라 있다. 그래서 나는 기를 쓰고 천상의 궁전을 오를 수 있었다. 근데 무척 가파른 계단이라서 '옛날에 왕이 나처럼 이 곳을 기어오르진 않았을테고 무슨 수로 올랐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이 3층 계단을 코끼리가 실어나르지도 않았을테고 가마에 태워서 신하들이 오르기엔 이 계단이 장난이 아닌데... 정말 불가사의란 단어로 밖엔 표현할 수 없다. 알려고 하면 머리만 아프고, 어쩌면 알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르겠다.
꼭대기에 고집스럽게 올라가서 앉아본다. 저쪽 숲 건너 바푸온의 메루산 형상이 보이고 광장이 다 내려다 보인다. 그 옛날 여기 앉아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왕의 기분을 느껴보려 했으나 바람이 시원하고 3층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무지 예쁘고 하늘과 숲의 끝이 맞닿는 부분에서 절묘한 색의 조화가 죽인다는 것 외에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위에서 사람들, 동물들, 나무들을 내려다 보다는 기분 자체는 짜릿했다.
궁전을 내려와서 숲속을 걸어나와 코끼리 테라스로 향한다. 벽에 진짜 코끼리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부조를 해 놓았는데 그 길이가 350m나 된다고 한다. 근데 어떤 못된 놈들이 코끼리 상아만 다 잘라간거야? 하긴 부처상도 머리만 다 잘라가더라. 참 고약한 취미다. 내 생각엔 저 뒤의 피네미나카스 꼭대기에서 보면 여기가 궁전의 테라스 정도 되는거 같다. 그리고 이 테라스 바로 앞이 넓은 광장이다. 전쟁을 앞두고 출전하기 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군사들에게 왕이 열변을 토했을 걸 생각하니 그 왕의 권력같은게 느껴진다.
어쨌든 이런 거대한 사원을 지어놓을 수 있다는 건 강한 왕권의 상징인 동시에 백성들에겐 또 하나의 노동력 착취겠지.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 같은 건축물들도 내가 지금 서 있는 앙코르 사원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그거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근데 지금에 와선 그 당시 고통이나 핍박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그들의 자유 의지인지 타의인지도 모른채 좋다고들 몰려와서 건축물 자체를 감상하는게 어째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니 적어도 이런 건축물을 보는 사람들은 이걸 만들게 한 왕이 대단하다고 느낄까? 이걸 만들어낸 국민이 더 위대하다고 느낄까? 궁금해진다. 왕이 없었다면 이걸 만들려는 시도를 안했을지도 모르고, 국민이 없었다면 이걸 만들지도 못했을텐데... 절대 왕권이란 어째서 백성의 힘과는 반비례하게만 커가는 것일까?
별 쓸데없는 것들을 고민하며 코끼리 테라스 앞의 광장에 서 있어 본다. 한낮의 태양이 뜨겁기만 하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문둥이왕 테라스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에 그늘이 생겼고, 마치 나는 영화속에서나 보았던 미로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미로 안에서 보면 벽면에 4∼5단짜리 부조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검을 든 사람의 모습, 보석을 휘감은 여인의 모습, 그리고 요정 압사라들이 조각되어 있다. 정말 이런 걸 두고 예술이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좁은 길 구석에는 팔이 잘린 사람, 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앉아서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지뢰 때문에 생긴 피해자들의 모습이다. 불과 20년 전에 베트남 남쪽 지방을 차지해 보겠다고 전쟁을 하다가 아군이고 적군이고 서로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묻어놨던 지뢰가, 전쟁이 끝난 지금은 죄없는 백성들에게만 그 피해가 가는 것이다. 모순이다. 난 아직도 이들을 마주 볼 자신이 없다. 징그러워서가 아니라 아직 내 감정의 정립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표정으로 이들을 마주 대해야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캄보디아인으로서 동정해야 할지, 전쟁의 피해자로서 불쌍한 마음을 지녀야 할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바라보야야 할지...
한 번 이들을 마주 볼 때마다 자꾸 그 잔상이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될지, 그리고 나는 또 내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할지...
넓은 광장을 걸어서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처음 본 바이욘 사원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고 있으며, 오늘 오전 내내 왕권과 국민, 전쟁과 캄보디아인, 권력과 예술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숙소로 돌아왔다. 이 곳 동남아에서 오후 12시에서 2시 사이에 돌아다니는 건 정말 자살 행위다. 헥헥~~.
오전에 너무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생각한 나머지 나는 갑자기 생각이 정지해 버린 느낌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숙소에서 쉬고 다시 여러 사원을 둘러보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내 기분이 동했는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냥 또 사원이구나. 거대하다. 돌덩이들이 무너져 있구나. 저 무화과 뿌리는 어떻게 저 돌들을 휘감아 부셔놓고 있는 걸까? 자야바르만 7세가 세운 사원에는 저렇게 꼭 무화과 나무가 있는데 그 뿌리들이 저렇게 돌들을 휘감아 그 사이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왕권에 대한 저주인가? 이런 저런 작은 생각들이 오고 갈뿐 이 거대함 앞에서 나는 그냥 모든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피곤한 하루였다. 마지막 프놈바켄 사원에서 일몰을 보고 해가 다 떨어진 후에도 한참을 일어서지 못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얼른 씻고 나는 그냥 잠을 청한다. 그 누구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잠을 청한다.
·입장권 - 40$ · 옷 - 5$ ·엽서 - 1$
·물 - 0.5$ · 점심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