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준비도, 예약도 없이 덜컥 태즈마니아에 와버린 써니!
비행기에서 내리고보니 막막하긴 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현금 10불을 주고 공항 셔틀을 타고 무작정 론세스턴 백패커스로 향한다. 허걱! full book이란다. 설마 이렇게 쬐그만 도시에 오는 사람도 없을텐데 방이 없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대략 난감이다. ㅡ,.ㅡ;;
터벅 터벅 배낭을 앞뒤로 짊어지고 거리를 걷는다. 이거 완전히 처량하다. 순간 눈에 번쩍 들어오는 현대 간판! 절망적이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써니 애국자가 되어 반가운 마음에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나는 keryn을 만났다. 나의 구세주...
현대 차에 관심을 보이는 한국에서 온 배낭을 짊어진 동양 여자애가 신기해 보였는지, 불쌍해 보였는지 사무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케이린은 이것 저것 많이도 물어본다. 어떻게 왔냐, 어디서 왔냐, 현대 차는 어떻게 아느냐 등등.
나는 한국에서 왔고, 뉴질랜드에 갔더니 태즈마니아가 좋다고 하길래 함 와봤다, 그리고 내 차도 현대차다 등등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절망적인 상황까지도 설명을 덧붙인다. 태즈마니아가 좋다는 말에 예약도 없이 왔더니 방도 없어서 지금은 완전히 노숙하게 생겼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케이린은 노란 전화번호부 책을 꺼내 어디론가 열심히 다이얼을 돌린다. 15불 per 1 night!!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저렴한 숙소도 있단 말인가???
그렇게해서 나는 o'keefe's hotel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고맙게도 케이린은 자신의 차로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고 나는 먼 땅에서 현대차가 만들어지는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다. 가이드 북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 멋진 숙소에서 단돈 15불에 묵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모두가 말리는 이 곳에, (멜번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혼자서 태지에 간다면 너무 너무 심심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고, 어떤 사람들은 렌트를 할게 아니라면 교통비가 장난이 아니라며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뱅기 티켓을 끊었던 것도, 아무런 예약도 없이 불쑥 이 땅을 찾은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었다.
내 여행은 늘 우연의 연속이었고, 행운의 연속이었으며 마치 정해진 길처럼 거침이 없었다.
묵을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나는 단잠에 빠져들었다. 침대에 눕자 마자 내가 지금 잠이 들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온 몸에서 스르르 무언가 빠져나가려함을 느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2시간?!?!
볕이 좋아서 나는 빨래를 하기로 한다. 빽팩이 아닌 탓에 세탁기는 없지만 있어봤자 때도 안 빠지고 드라이도 안되는거 그냥 손으로 빨자! 열심히 빨래를 하고 방에 있던 행거를 테라스로 가지고 나가 본격적으로 빨래를 말린다.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시계를 봤더니 5시다. 배낭족 처지지만 저녁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케이린에게 전화를 했다. 암튼 점점 대담해져서 큰일이다. ㅡ,.ㅡ;;
케이린은 내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내 뜻을 전했다. 결국 케이린은 일이 끝나고 호텔로 온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30분 후 케이린이 도착했다. 자세히 보니 미쉘 파이퍼를 닮았다. 47살이라는데 믿을 수가 없다. 하긴 케이린도 나보고 22살이라고 했으니 피장파장인가?
19살, 21살인 딸이 있지만 자기보다 13살 어린 연하의 그리스인 남편과 재혼해서 살고 있는 케이린은 아이들을 챙겨야 해서 오늘 밤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호텔 바에서 간단히 칵테일과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holliday중인 나에게 돈을 내게 할 수 없다며 한사코 자기가 계산을 한다고 우겼다. 이럴려고 한게 아닌데...
케이린이 가고 나는 남았다.
케이린이 나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고 나는 태즈마니아 여행의 윤곽을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은 뱅기표를 떡 사먹고 이곳에 더 눌러앉고 싶다는 발칙한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중이다. 너무나 충동적으로 온 곳이고, 이 곳에 오기 전에는 정보도 그리 충분하지 않아 몰랐었는데 여기 정말 너~~~무 좋다.
누가 태즈마니아 사람들이 배타적이고 불친절하다고 했는가?
이 곳이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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